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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 꾸준함이 미덕이 아닌 시대에키워드 해설 2025. 8. 5. 14:16
성실은 미덕일까, 아니면 사회가 요구하는 착한 이미지일까?
꾸준함이 피로하게 느껴지는 시대에, 나만의 리듬으로 살아가기 위한 성실의 재정의를 시도합니다.
목차
성실의 정의
성실은 오랫동안 사회적으로 높이 평가되어 온 미덕입니다.
‘정직하고 부지런하다’, ‘자기 역할을 묵묵히 해낸다’는 이미지는 특히 한국 사회에서 칭찬의 상징처럼 여겨졌습니다.
어릴 적부터 우리는 ‘성실한 아이’가 되도록 교육받으며 자라왔고, 누군가에게 성실하다는 말을 들으면 성공의 가능성을 인정받은 듯한 안정감도 느꼈습니다.하지만 성인이 되어 다양한 관계와 역할 속에서 살아가다 보면, ‘성실’이라는 말이 점점 가볍지 않게 들리기 시작합니다.
때로는 그 말이 칭찬이 아니라 당연한 전제처럼, 혹은 나에게 더 많이 요구해도 괜찮다는 신호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성실은 과연 여전히 순수한 칭찬일까요?성실이라는 칭찬의 이면
성실하다는 말에는 언제나 보이지 않는 기대와 기준이 함께 붙습니다.
그 사람은 항상 일찍 출근하고, 실수를 하지 않으며, 감정 기복 없이 일관된 태도를 유지하고, 부탁을 거절하지 않는 사람일 거라고 우리는 추정합니다.그렇기에 '성실하다'는 칭찬은 종종 **‘착하다’, ‘순하다’, ‘말이 없다’**는 평가로 확장됩니다.
그리고 이 확장은 어느 순간부터 성과나 전문성이 아닌, 태도에만 집중된 인상을 만들기도 합니다.성실은 본래 스스로 정성을 다하는 태도였지만, 사회적으로는 점차 감정 표현을 절제하고, 무리한 요청도 감내하는 사람에게 부여되는 말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성실은 존중이 아니라, 소진을 당연하게 여기는 명분으로 오용되기도 합니다.꾸준함이 착함으로 오해될 때
성실한 사람은 ‘착하다’는 이미지와 자주 연결됩니다.
특히 조직이나 관계 안에서는, 말이 많지 않고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사람, 묵묵히 자기 일을 해내는 사람이 ‘성실하고 착한 사람’으로 인식되죠.문제는 이 인식이 굳어질수록, 스스로를 성실하게 유지해야만 한다는 강박감이 생긴다는 점입니다.
이 강박은 다음과 같은 형태로 작동합니다.“예전에도 다 해냈잖아. 이번에도 할 수 있지?”
“너만큼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없잖아.”
“부탁할 사람이 너밖에 없어.”
이런 말들 앞에서 우리는 ‘싫다’고 말하는 것이 성실하지 못한 행동처럼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결국, 해내야 하고, 계속해야 하고, 참아야 합니다.
성실은 그 자체로 미덕이 아니라, 반복되는 자기 부정과 침묵의 결과가 되곤 합니다.착한 사람 컴플렉스
이런 맥락에서 성실은 때때로 ‘착한 사람 콤플렉스’와 연결됩니다.
나를 지치게 하는 상황에서도 버티고, 거절하지 못하고, 혼자 감당하면서도 여전히 성실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밀어붙이는 상태입니다.이 컴플렉스는 단순한 자기 착취가 아닙니다.
오히려, 타인의 기대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는 마음,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 관계를 망치고 싶지 않다는 두려움이 얽혀 있는 감정의 복합체입니다.그래서 성실한 사람일수록 ‘나는 왜 쉬면 안 될 것 같지?’,
‘지금 그만두면 배신하는 것 같아’ 같은 생각을 자주 하게 됩니다.이러한 감정 구조 속에서 성실은 내가 나를 지탱하는 방식이 아니라, 나를 갉아먹는 틀이 되기도 합니다.
성실이 피로한 이유
오늘날 성실이 피로한 이유는, 사회의 구조와도 깊이 연결돼 있습니다.
현대 사회는 성과, 효율, 빠른 회복, 즉각적인 반응을 요구합니다.
그런데 성실은 본질적으로 ‘과정 중심’입니다.
느리지만 끝까지 해내는 힘, 결과보다도 태도를 중시하는 가치이기 때문입니다.그런 성실함은 결과 중심 사회에서 종종 ‘애쓴 건 알겠지만…’이라는 말로 평가절하되기도 합니다.
또한, 성실한 사람에게는 실수가 허용되지 않습니다.
늘 완벽하게, 늘 책임감 있게, 늘 먼저 움직여야 한다는 비공식 규범이 작동합니다.그렇기에 성실은 오늘날 더 이상 단순한 미덕이 아닙니다.
그건 일정한 감정적 노동과 자기 검열을 동반하는, 무겁고 피로한 역할이 되었습니다.나에게 필요한 성실의 방식
성실을 버리자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다만, 우리가 그동안 ‘성실해야 한다’고 배워온 방식이 타인의 기대와 사회적 규범에 의존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나 스스로 정한 기준에 따른 것이었는지를 구분해볼 필요가 있다는 말입니다.
성실은 결국 **‘내가 계속 살아가고 싶은 방식으로 살아가는 힘’**일 수 있습니다.
그 힘은 반드시 남이 보기 좋아야만 하고, 누군가에게 증명되어야만 하지는 않습니다.
지금 내가 이 방식으로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성실은 나를 살리는가, 아니면 지우는가?
나는 이 리듬을 좋아하는가, 아니면 따라가고 있는가?
이 질문들에 정직해지는 것.
그게 바로 성실이 ‘버텨야 하는 의무’에서 ‘지켜낼 수 있는 삶의 방식’으로 바뀌는 출발점입니다.'키워드 해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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