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 복수란 무엇인가: 공정함을 되찾기 위한 감정의 분출
드라마 <트리거>를 통해 다시 떠오른 '사적 복수' 키워드. 감정의 정의, 공권력의 부재, 그리고 복수와 정의의 경계에 대해 사유합니다.
최근 시작한 넷플릭스 시리즈.
총기가 불법인 대한민국에 총기가 풀린다는 컨셉이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그러나 영화적 설정이 아닌 누구에게는 매일 마주하는 현실이라는 점에서 한편으론 쉽게 콘텐츠로만 치부할 수는 없더라고요.
과연 내게 총이 생긴다면? 하는 생각도 들면서, 나 역시 개인적으로 복수하고 싶은 누군가가 있나 떠올렸습니다.
1. 사적 복수의 정의
‘사적 복수’는 말 그대로 공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고, 개인이 스스로 응징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법적으로는 대부분 자력구제(自力救濟)에 해당하며, 이는 형법상 허용되지 않는 방식입니다. 누군가의 잘못에 대해 법이 처벌하지 않거나 그 수위가 충분하지 않다고 느껴질 때, 개인이 직접 나서서 '정의'를 실현하려 하는 겁니다.
이때의 ‘정의’는 제도적 판단이 아니라 감정과 경험에 기반한 주관적 정의입니다. 그렇기에 복수는 ‘정당하다’고 느끼게 만드는 힘이 있지만, 그만큼 위험하고 복잡한 개념이기도 합니다.
2. 왜 사람들은 사적 복수를 꿈꾸는가
“그 사람은 분명히 잘못했는데, 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걸까?”
누군가에게 상처받았다는 확신은 있는데, 세상이 아무 일도 하지 않을 때 사람은 좌절합니다. 그 좌절이 분노로 바뀌고, 분노는 복수의 감정을 불러옵니다. 그리고 그 복수는 단지 해코지를 넘어서, “이건 정의로운 일이다”라는 감정적 명분을 가집니다.
사적 복수는 단순히 공격하려는 충동이 아니라, 불공정에 대한 저항일 수 있습니다. 특히 공권력이 무기력하다고 느껴질 때, 사람들은 자신이 겪은 불의를 자신이 해결하려는 욕망에 사로잡힙니다. 피해자가 스스로를 보호할 수 없는 사회에서는, 복수는 일종의 ‘생존 전략’처럼 받아들여지기도 합니다.
3. 드라마 속 복수 서사가 반복되는 이유
넷플릭스 <트리거>는 총을 획득한 사람이 사적 복수를 하는 에피소드를 포함합니다. 주인공은 가해자를 벌하지 않는 사회 시스템에 절망하고, 스스로 응징합니다. 이와 유사한 구조는 <더 글로리>, <비질란테>, <모범택시> 같은 드라마에서도 반복되어 왔습니다.
이런 복수 서사의 공통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 피해자는 오랫동안 참고, 버티며 살아왔음
- 법과 제도는 도움을 주지 않음
- 결국 가해자들은 사회적으로도 아무 제재 없이 살고 있음
- 마지막에 주인공이 직접 처벌하고, 시청자는 통쾌함을 느낌
이 모든 것은 결국 "정의롭지 못한 세상에서, 우리가 바라는 정의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복수는 폭력적이지만, 그 동기에는 공감을 유도하는 구조가 있습니다.
4. 공권력의 부재와 감정의 정의
사적 복수는 단순한 분노의 표출이라기보다, 제도의 한계를 드러내는 감정의 결과입니다.
가해자가 법적으로는 무죄이거나, 가해 행위가 경미하게 처벌되는 경우—피해자와 그 주변인은 심각한 부조리감을 경험합니다. ‘이래서 법을 믿을 수 있겠어?’라는 정서가 생기고, 결국 정의는 ‘감정’의 영역으로 이동하게 됩니다.
하지만 감정은 기준이 없습니다. 복수의 강도는 피해자의 고통을 반영하기 때문에, 때론 정당한 분노를 넘어서는 폭력으로 발전하기도 합니다. 이 지점에서 사적 복수는 또 다른 부정의를 만들어내고 맙니다.
5. 정의와 복수의 경계에서
정의는 제3자의 시선으로, 복수는 1인칭의 감정으로 움직입니다. 복수는 내가 판단하고 내가 실행하는 것이고, 정의는 누군가로부터 ‘인정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수는 빠르고 명쾌하지만, 정의는 느리고 복잡합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빠른 정답을 원하고, 속 시원한 해답을 갈망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럴수록 감정적 판단과 제도적 판단의 간극은 커지고, 사적 복수에 대한 매혹은 더 강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이런 질문이 필요한 게 아닐까요.
“정의는 느리기 때문에, 복수가 필요한 걸까?”
“복수가 통쾌한 이유는, 정의가 제때 오지 않아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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